오래 키운 식물과 더 보고 싶은 식물은 달랐습니다
크게 한 번 이사를 하면서 모든 식물을 함께 데려갈 수 없다는 상황을 처음 깊이 고민했습니다. 특히 오래 키우지는 않았지만 더 지켜보고 싶었던 커다란 글로리오섬을 보내고 난 뒤, 새 식물을 들일 때 오래 함께할 수 있을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저는 원래 이사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닙니다. 한곳에 자리를 잡으면 꽤 오래 지내는 편이었는데, 크게 한 번 이사를 준비하면서 생각보다 오래 붙잡고 고민한 일이 있었습니다. 집에 있는 식물들을 어떻게 할지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가능하면 모든 화분을 데려가고 싶었습니다. 제가 들이고, 물을 주고, 새잎을 기다리며 함께 지낸 식물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집의 공간과 이동할 수 있는 짐의 양을 생각하면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결국 일부는 데려가고, 일부는 보내야 했습니다.
짐은 줄일 수 있고 필요하면 다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식물은 그렇게 정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화분 하나마다 제가 보낸 시간이 붙어 있어서,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두고 갈지 정하는 일이 물건을 고르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삿짐보다 오래 붙잡고 있었던 화분들
먼저 오래 키운 식물부터 챙겼습니다. 몇 번의 계절을 같이 보낸 화분, 상태가 좋지 않았던 시기를 지나 다시 새잎을 낸 식물은 쉽게 내려놓기 어려웠습니다. 함께한 시간이 길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선순위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마음에 남은 건 의외로 오래 키운 식물만이 아니었습니다. 커다란 글로리오섬 하나가 그랬습니다.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자꾸 눈이 갔습니다. 아직 서로 익숙해지는 중이었는데, 왠지 우리 집과 잘 맞을 것 같고 더 오래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져갈 화분을 고르는 동안에는 자꾸 이유를 붙이게 됐습니다. 이건 오래 키웠으니 가져가야 하고, 저건 새집에서도 둘 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고, 또 어떤 화분은 크기가 커서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스스로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준을 세워도 마음이 순서대로 정리되지는 않았습니다. 오래 키운 시간과 지금 마음이 가는 정도가 꼭 비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크기였습니다. 이삿짐을 하나씩 정리할수록 그 화분까지 함께 옮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게 분명해졌습니다. 오래 키운 식물들을 먼저 챙기고 나니 더 고민할 여지가 줄었습니다. 결국 글로리오섬은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
글로리오섬은 식물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에게 보냈습니다. 제가 데려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적어도 식물을 좋아하고 잘 돌봐줄 사람에게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아쉬웠던 건 이미 함께한 시간이 아니라 앞으로 볼 수 있었을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잎은 어떻게 나올지, 새집에서는 어디까지 커질지, 몇 달 뒤에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는데 그다음을 제가 보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보내는 것도 결국 내가 해야 할 선택
친구에게 화분을 보내고 나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에 가서 지금보다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정도였습니다. 제가 계속 키웠다고 반드시 더 잘 자랐을 거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손에서 떠난 뒤에는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 불편한 질문도 따라옵니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수도 있는데 식물을 계속 들이는 게 결국 제 욕심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좋아한다는 이유로 화분을 늘려놓고, 생활이 바뀌었을 때 일부를 보내야 한다면 처음부터 더 신중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일을 겪은 뒤 식물 키우기를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식물이 있는 집을 좋아하고, 새잎이 나오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언젠가 또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즐거움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보내는 일을 실패처럼만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 왔을 때 가능한 선택을 하고, 그다음 자리에서도 잘 지내기를 바라는 것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책임이라고 생각해보려 합니다.
그 이사 뒤로 식물을 고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새 식물을 들일 때입니다. 예전에는 마음에 드는 식물을 보면 집 어디에 둘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다음 장면까지 조금 더 멀리 봅니다.
이 식물이 지금보다 훨씬 커져도 계속 함께하고 싶은지, 생활이 바뀌어 다시 짐을 싸게 되더라도 데려가려고 할 것 같은지 한 번 더 생각합니다. 크기나 관리 난이도만 보는 것은 아닙니다. 몇 년 뒤에도 이 화분을 두고 오래 고민할 것 같은지를 스스로 묻게 됐습니다.
그 질문을 한다고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들이는 일은 줄었습니다. 잠깐 예뻐 보이는 식물과 오래 함께하고 싶은 식물이 꼭 같지는 않다는 걸 한 번의 이사를 통해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글로리오섬을 떠올리면 지금도 조금 아쉽습니다. 더 오래 키워보고 싶었던 식물을 보내야 했던 마음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아쉬움 덕분에 다음 식물을 들이는 순간에는 조금 더 오래 생각하게 됐습니다.
식물을 덜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 들이는 순간을 더 오래 고민하게 됐습니다.